1970년대는 세계경제가 큰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전후 질서를 이끌어온 브레턴우즈 체제(국제통화체제)가 붕괴되고, 1973년에는 1차 석유파동이 세계를 강타했다. 통화 가치의 불안정,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보호무역주의의 부상 등, 국제사회는 경제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G7이다.
G7(Group of Seven)은 단순한 경제 회의체를 넘어, 세계경제와 정치 이슈를 주도하는 선진국들의 협의체로 자리매김해왔다. 초기에는 단순한 재무장관 간의 비공식 회의로 시작했지만, 이후 정상급 회담으로 격상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G7의 창설 배경과 과정, 초기 형태였던 G5와 G6, 캐나다의 참여로 확대된 G7, 러시아 참여로 형성된 G8까지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혼란의 시대가 낳은 필요 - G7의 창설 배경
G7의 탄생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국제경제가 격변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나타난 대응의 산물이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턴우즈에서 체결된 협정에 따라 세계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와 고정환율 제도를 채택한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었고, 금 보유고가 줄어들면서 점차 체제의 균열이 발생했다.
결국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는 붕괴하게 된다. 이어 1973년에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인해 세계는 1차 석유파동을 겪게 되었고,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경제를 짓눌렀다. 이런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주요 선진국들은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협의체 구상이 본격화되었다.
2. 백악관 도서관에서 시작된 소규모 회의 - Library Group과 G5
G7의 시작은 매우 소박했다.
1973년, 미국의 재무장관 조지 슐츠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주요국의 재무장관들을 백악관 도서관에 초청해 회의를 열 것을 제안했다. 이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재무장관이 모여 ‘Library Group’이라는 이름의 비공식 회의를 결성했다. 이는 선진국 간의 긴밀한 경제정책 조율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Library Group은 당시 세계경제의 약 4% 이상을 점유하는 국가들로 구성되었으며, 이탈리아는 비록 경제 규모는 충분했지만 당시 정부의 좌파 성향으로 인해 초기에 배제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5년, 일본이 이 그룹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G5 재무장관 체제가 형성된다. 이 회의는 공식적인 선언이나 조직 없이 이루어진 비공식적 모임이었지만, 그 자체로 세계경제의 중요한 조정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3. 재무장관 회의에서 정상회담으로 - G6의 출범
이후 G5 재무장관 회의는 정치적으로 더욱 중요한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과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과거 G5 재무장관 회의의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경제정책 조율이 단순한 재무장관 간 회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이를 정상급 회의체로 격상시키려 했다.
그 결과, 1975년 프랑스 랑부이예에서 첫 G6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 더해 이탈리아가 정식으로 참여했다. G6는 회원국 자격 요건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1인당 GDP 11,000달러 이상, 세계 총 GDP의 4% 이상이라는 조건을 설정하며 선별된 국가들의 협의체로 출발했다.
G6는 처음부터 단순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와 안보문제까지 포괄하는 주요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선진국들이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 시도로, G6는 국제협력의 상징이 되었다.
3. 캐나다와 러시아의 참여, 그리고 G7과 G8의 형성
초기 G6 회의에서 캐나다는 참여를 희망했지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로 낮아 거절당했다.
그러나 1976년 산 후안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캐나다가 포함되면서 G7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된다. 이로써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7개 선진국 정상들이 모여 매년 회의를 여는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을 겪는다. 냉전이 종식되고,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G7 국가들도 핵확산 방지와 안보 협력의 차원에서 러시아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1992년 뮌헨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초청국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고, 이후 몇 차례 비공식 참석을 거쳐 1998년 영국 버밍엄 회의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G8 체제가 완성된다. 그러나 2014년 G7 국가들은 러시아의 자격을 정지시키기로 결정했고, 그 이후 G8은 다시 G7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유럽연합(EC) 집행위원장은 1978년부터 G7 회의에 정례적으로 참석하며 유럽 전체의 입장을 반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G7이 단지 국가 단위의 협의체를 넘어서, 세계 질서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조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4. 2025년, 다시 카나나스키스에서
2025년 6월, G7의 51차 정상회의가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에서 개최된다. 이는 2002년 G8 회의 이후 두 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G7 회의이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G7은 세계경제의 현안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안보, 보건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응해 왔다. G7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국제사회가 위기와 변화를 어떻게 협력적으로 극복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회의체는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 앞에서 중요한 협의와 결정을 이어갈 것이다.



